2011년 4월 18일 KAIST 창의관 103호에서 있었던 유학설명회 발표 자료.
유학생으로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으니 적당히 걸러서 정독하길
나도 동의할 수 없는 부분 많은데, 아마 또 정모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랑은 다르겠지. 원래 이런게 개인마다 적응 과정도 다르고 추구하는 성장이나 인생 방향도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동의. 저 교수님은 예전부터 자기 경험이나 편견을 과도하게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더라고... 그것만 주의하면 얻을 부분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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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 유학에 대해서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 중에 가장 시비거리가 없는 것 같은데?
내가 느낀 문제점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엄상일 교수님은 상당히 편협하고 좁은 시각에서 유학을 보고 있는 듯 해. 다르게 표현하자면 한국학부-박사유학-해외포닥-한국교수 방식의 진로를 거의 당연시하고 그 내에서만 유학의 장단점을 보고 있다는 거지.
내가 개인적으로 보기에 유학의 가장 큰 장점은 두가지인데, 둘 다 엄상일 교수의 프레젠테이션에서는 빠져 있어. 사실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학생들 더 잘 가르치는 것 아니고, 학문적으로 수준이 높은 분들 주변에 있다는 것의 메리트에도 어느정도 한계가 있어.
내가 보는 첫째 장점은, 수평적 관계야. 엄상일 교수 슬라이드에도 한번 나오긴 하는데, 그분은 연구실 인적 관계에만 집중하는 듯 해. 나는 연구 문화에 대해 비교적 중점을 두는 편이야. 예를 들어, 내가 노벨상급 학자한테 가서 "너 계산 틀렸다"라고 주장하면, 여기서는 그 사람이 날 존중하고 신경써서 들어줘. 한국에서 그런 짓 했다가는 머리에 피도 안마른 새끼가 외람되게 설친다고 욕먹겠지. 근데 여기 사람들도 사실 일개 대학원생이 그렇게 따져댈때 그들이 틀릴 가능성이 높다는 건 당연히 알아. 다만 그들은 질문을 던지고 틀리는 것이 학자가 되는데 필수적인 경험이라는 인식이 있고, 또한 만에 하나 일개 대학원생이 그들이 못 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열려있는 겸허함이 있다는 거지. 학자의 기본 정신은 누구나 항상 틀릴 수 있다는 거니까.
두번째 장점은, 다문화적인 환경에서 가능한 사회적 학술적 교류야. 한국 학계를 보면 주로 저명한 교수 아래서 자기네 팀원들만 끼고 프로젝트들이 굴러가는 구조가 많은데, 외국 학계를 보면 국가와 인종을 불문하고 재능만 있으면 누구랑도 협력적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 최근 시카고에서 IBS와 재미 한국인 물리학자 협회 공동주최의 심포지움이 있었는데, IBS측에서는 계속 "우리 연구비 많아요, 제발 재능있는 물리학자들 우리 팀에 와주세요"라고 사정하는 분위기였고, 재미 한국인 물리학자들은 "너네 그런 배타적 수직적 문화 고치지 않으면 아무리 돈 퍼부어봐야 제대로 된 학문은 할 수 없음"이라는 분위기였어. 그게 내가 개인적으로 보기엔 한국 학계를 발목잡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야. 온 세계의 재능있는 사람들로부터 아이디어를 모아도 될까말까한게 연구인데 말야.
내가 보기엔, 엄상일 교수님은 어떻게 보면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들이 미국에서 밟는 스탠다드 코스를 아주 잘 거친 케이스에 속해. 대부분 한국 유학생들은 한국 유학생들이랑만 교류하면서, 그냥 속한 연구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저명한 교수한테 열심히 배워서 논문 많이 내고 인맥/스펙 쌓아서 괜찮은 국내 교수 자리 얻는 것을 목표로 하거든. 근데 정말 국제적인 스케일에서 뭔가 해보고 싶다면, 인맥보다는 문화적 사회적 차이를 넘나들어 협동할 수 있는 스킬이 가장 중요해. 요즘 얼마나 세계적으로 재능있는 학자들이 많은데, 아무리 본인이 천재인들, 대부분 사람들은 혼자 있을 경우 우물안 개구리 신세거든.
아마 정모는 좀 더 광범위하게 사회과학과 과학사학을 넘나드는 시각을 강조하지 않을까 싶네. 암튼 내가 보기에 엄상일 교수 슬라이드들은 좀 유학의 본질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경향이 있다고 봐. 물론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엄상일 교수님이 겪은 식의 유학생활을 할거고, 그들에게는 교수님의 조언이 참 유용할거야. 하지만 내 개인적 시각은 그럴 바에야 그냥 한국에서 병특 박사 하고 포닥 유학 나오는게 훨씬 실리적인 선택인 것 같아. 박사유학 나오려면 정말 단순 지식 뿐만 아니라 문화와 연구자로서의 패러다임을 배우는게 중요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