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성격, personality)을 가지는 로봇에 대한 연구가 발전하고 있다. 일률적으로 양산되는 기계들 사이에서 하나의 로봇이 다른 로봇과 차별성을 가지는 개성을 어떻게 부여할지 여러 로봇 연구자들이 해답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개성을 가진 로봇이란 어떤 것일까? 영화를 통해 그려진 로봇을 살펴보면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해 볼 수 있다. 영화 ‘바이센티니얼 맨(Bicentennial Man, 1999)’의 여성형 로봇 갈라테아(Galatea)는 혼자만 있는 시간에도 가만히 있지 않고 노래를 흥얼 거리며 춤추듯 걸어다닌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서슴없이 말을 걸고, 약간은 흥분되어 있는 듯한 모습의 갈라테아는 활달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로봇인 앤드류 마틴 조차도 갈라테아의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장면이 영화상에서 연출되기도 했다.
▲ 영화 ‘바이센티니얼 맨’의 한 장면. 춤을 추고 있던 로봇 ‘갈라테아(Galatea)’
실제 로봇들 중에도 다양한 개성을 보여주도록 개발된 로봇들을 찾아볼 수 있다. 와세다 대학교 타카니시 랩의 로봇 ‘코비안(Kobian)’은 우스꽝스러운 제스처와 목소리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농담을 던지며 한 명의 코미디언이 된다. 그림을 그리거나 예술작품을 다루면서 자신만의 창작 스타일을 뽐내는 로봇들도 있다. 골드스미스 대학의 패트릭 트레셋(Patrick Tresset)이 개발한 로봇 ‘에이콘(AIKON)’은 사람과 도화지를 번갈아 가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초상화를 그려낸다. 이 로봇이 그리는 그림은 프린터가 인쇄기를 통해 사진을 출력하듯이 정교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크로키와 같이 몇 개의 선으로 얼굴을 스케치하여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 느낌을 선사한다. IDC miLAB의 가이 호프만(Guy Hoffman) 박사가 조지아공대에서 공동으로 개발했던 마림바 연주 로봇 ‘샤이먼(Shimon)’은 사람과 함께 공동 연주를 하도록 구현된 로봇이다. 이 로봇은 자신의 파트에서는 열정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연주를 하다가도 사람과 템포를 맞춰야 하는 파트에서는 사람과 시선을 교환하며 차분한 모습으로 상태를 전환하기도 한다.
▲ 우스꽝 스러운 제스처와 표정을 보이고 있는 로봇 코비안(Kobian)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로봇에 개성이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일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바로 로봇의 외형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다. 히로시 이쉬구로(Hiroshi Ishiguro) 교수가 개발한 로봇 ‘제미노이드 F(Geminoid F)’는 하나의 로봇이 한명의 사람을 똑같이 닮도록 만들어졌다. 바로 그 한명의 사람이 다른 그 누구와 같을 수 없듯이 그 사람을 꼭 닮게 만든 로봇 또한 다른 그 어떤 로봇과 같을 수 없다. 바로 생김새가 ‘제미노이드 F’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최근 도시바에서도 사람을 꼭 닮은 로봇 ‘에이코 치히로(Aiko Chihiro)’를 개발해 도시바만의 로봇을 선보였다. 이 로봇은 여성형 로봇으로 친절한 성격이 느껴질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방문자 안내를 위해 사용될 계획이다.
하지만 외형만으로 로봇의 개성을 이야기하기는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 앞서 이야기한 영화 ‘바이센티니얼 맨’의 로봇은 생김새보다 행동으로 그 로봇의 성격적 특징을 결정짓는다. 예를 들어 외향적인 로봇은 목소리가 더 크다거나 움직임의 범위가 더 넓고, 내향적인 로봇은 수줍어하거나 정서적 표현을 자주 하지 않는 식의 행동 양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갈라테아가 외향적 성격을 보이는 로봇의 대표적 예로 볼 수 있다.
두드러진 행동 이외에 사소하거나 미세한 움직임이 로봇을 더 살아있거나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그 사소한 행동에는 윙크나 고개의 끄덕임, 시선 회피, 뚜렷한 목적이 없는 행동(Idle motion) 등이 포함된다. 가이 호프만(Guy Hoffman) 박사가 개발한 로봇 트래비스(Travis)는 음악에 맞추어 고개와 발을 흔드는데, 사소한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로봇의 개성이 잘 나타나있다.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행동이라도 사람은 그러한 사소한 움직임을 통해서도 로봇만의 차별성을 찾아내 그 로봇에게 성격을 부여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관련 심리학 연구로 사람들은 자신이 다루는 기계들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그것만의 성격을 파악하고자 하거나 사람과 닮은 특성들을 기계에 부여하려고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 영화 ‘아이, 로봇(I, Robot, 2004)’에서 주인공 로봇이 윙크를 하는 장면
사용자와 로봇이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그 로봇만의 특별함이 생기기도 한다. 에니메이션 ‘월-E(Wall-E, 2008)’에서 주인공 로봇인 ‘월-E’는 동반자 로봇 ‘이브’와 함께 여정을 거치며 추억을 쌓아가다가 여정 마지막 즈음 메모리가 손상되는 사고를 당해 ‘평범한’ 청소 로봇으로 초기화되고 만다. 초기화된 월-E는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특별한 존재의 로봇이 아니었다. 즉, 공유된 경험이 그 로봇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였던 것이다. 실제 교육현장에서 테스트된 실험에서도 사용자와 로봇의 경험 공유의 중요성을 밝힌 연구가 있었다. 아이와 로봇이 상호작용을 하기 전에는 로봇에 대한 아이의 감정이 부정적이거나 중립적이었던 것에 비해 상호작용이 진행된 후에는 로봇을 친밀하거나 중요한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연구다. 같은 로봇이라도 받아들이는 사용자의 상호작용 경험에 따라 그 양상이 변하게 되는 것은 로봇의 개성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상호작용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로봇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에서 이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사용자가 스마트폰을 사용할수록 스마트폰의 사용자 맞춤형 서비스는 해당 기기만의 특별함을 극대화 시켜준다. 스마트폰은 공유된 경험(사용자가 찍은 사진, 영상, 검색 기록, 사용 시간대, 서비스된 위치 등)을 수집 및 분석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그것이 정서적인 서비스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정보가 고스란히 스며든 스마트폰에 특별함을 느낀다. 물론 가끔 무서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건 우리가 아직 그러한 기술에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되었건 스마트폰의 경우를 통해 우리는 사람과 로봇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 간접적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로봇의 개성을 결정짓는 요소들을 수치화 및 정량화할 수 있을까?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E. Tory Higgins)는 세상을 바라보고 대처하는 양상이나 선택에 대한 선호도를 결정짓는 상황에서 한 사람의 성격이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즉, 결정 및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각 사람마다의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고 그것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로봇에게도 선택(Decision Making)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개변수를 조절하여 그 로봇만의 특별한 행동 양상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면, 그 결과로부터 우리는 그 로봇만의 상황 대처 방식, 즉, 로봇의 개성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 매개변수를 어떻게 고안하고 조절할지가 로봇의 개성을 연구하고 개발하는데 중요한 기술이다.
성격 심리학이나 로봇 및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성격 모델은 5요인 모델(Big Five 혹은 Five Factor Model)이다. 이 모델에서는 성격을 이루는 5가지 요인으로 외향성(Extraversion), 친화성(Agreeableness), 성실성(Conscientiousness), 신경증(Neuroticism), 개방성(Openness)이 있다고 설명한다.
로봇 연구자들은 로봇의 생김새나 행동 특징, 음성 합성 등의 디자인 특징들이 바뀔 때 위 다섯 가지 성격 요인이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고 나타나는지 연구하고 있다. 미국전기전자학회의 저널 감성 컴퓨팅(IEEE Transaction on Affective Computing) 최근호에는 개성을 컴퓨팅하는 것에 대한 서베이 논문이 실렸다. 여기에 정리된 내용에는 사람의 개성을 분석하는 컴퓨팅 기술에 대해서도 정리가 되어있고, 로봇이나 가상 에이전트의 개성을 만들어내는 성격생성기술(Automatic Personality Synthesis)에 대한 연구들도 정리되어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성격생성기술은 첫째로 음성 합성에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합성된 음성의 크기와 톤, 말의 빠르기 등에 따라 외향성의 높고 낮음 등이 얼마나 나타났는지 평가된다. 생김새와 얼굴 표정, 몸 움직임 등을 비교하여 에이전트들의 외형적 디자인 요소들이 어떠한 개성적 특징으로 나타나는지 탐구하는 연구도 소개되었다. 실제 로봇에도 어떤 디자인 요소들이 개성을 느끼게 하는지 탐구하는 논문들이 소개되기도 했다. 로봇의 외형 뿐 아니라 선택하는 단어와 문장의 종류, 사용자와 로봇의 물리적 거리, 로봇의 시선 처리 등에 대한 특징들도 개성을 평가하는 요소로 사용되었다.
▲ 외형에 따라 어떤 개성 특징이 나타나는지 평가하기 위해 디자인된 가상 에이전트들
하지만 성격생성기술은 실제 로봇 응용 연구에서는 다양하게 진행되어오지는 못했다. 그동안의 로봇 연구에서 로봇의 디자인은 작업을 하기 편하게 고안되어왔고, 로봇 개발자의 개인적 판단에 의존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성격의 5가지 요인 중 외향성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으로 많이 이루어졌지만 나머지 성격 요인인 친화성, 성실성, 신경증, 개방성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미흡한 수준이다. 그리고 그동안은 로봇이나 가상 에이전트의 표현을 위주로 개성이 연구되어 왔지만, 상황에 따른 인공지능의 결정 프로세스와 대처 방식에도 개성의 개념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인간과 로봇이 밀접한 교류를 하게되면서 사람은 로봇을 더욱 사회적인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소셜 로봇 분야에는 로봇의 개성이라는 주제가 중요한 분야로 떠올랐다.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지만 사람의 요소들을 이해하고 모델링하여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융합 학문으로서 발전 가능성이 큰 영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따라 로봇이나 가상 에이전트에게 개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연구 결과들도 점차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률적으로 동일한 서비스만 제공하는 로봇이 아니라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사용자와 교류를 하며 사용자에게 특별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로봇의 발전을 기대해본다.▒ 이원형 KAIST 로보트 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