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그리고 로봇공학의 발달과 함께 로봇을 대하는 윤리적 태도에 대한 여러 관점이 제시되고 있다. 로봇에 의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가치는 무엇일지 고민해봐야 할 때다.
서비스 로봇과 소셜 로봇 분야의 발전으로 로봇은 일상생활 가까이에 존재하게 되었고 앞으로 더욱 많은 로봇이 인간과 공존하게 될 예정이다. 로봇전시회장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데, 로봇들은 더는 ‘만지지 마시오’라는 경고 문구 너머에 존재하지 않고, 직접 만져보고 교감해 볼 수 있는 체험 가능한 공간에서 관람객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다.
이러한 로봇의 접근성은 특히 아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아주 좋은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의외로 아이들은 로봇을 향해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때가 많다. 앞서 이야기한 전시회장의 환경에서도 아이들은 로봇이 이동하는 경로를 막아선다거나 로봇을 향해 나쁜 말을 내뱉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하는 모습들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필자도 국내 로봇전시회인 로보월드 행사에서 로봇을 시연한 적이 있는데, 로봇을 때리고 못살게 구는 아이들 때문에 곤혹을 느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 사진설명: 전시회장에서 로봇을 못살게 구는 아이들사진출처: 논문 Brscić, Drazen, et al. "Escaping from Children's Abuse of Social Robots."Proceedings of the Tenth Annual ACM/IEEE International Conference on Human-Robot Interaction, 2015
스웨덴 로봇 드라마 ‘리얼 휴먼’에서는 여성형 로봇이 길거리에 나갔다가 길거리의 아이들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모습을 담아내기도 했었다. 극 중에서 로봇은 동양계 여성으로 묘사되어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갖춘 데다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소중히 다룰 필요가 없다는 점이 부각되었다. 이 드라마는 인간의 공격성 혹은 우월감의 표출이 로봇에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내어 그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지난 3월 초에 미국 포틀랜드에서 열린 ACM/IEEE 인간-로봇 상호작용(HRI) 국제 학회에서는 아이들의 로봇을 향한 공격성을 어떻게 극복 또는 회피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이 연구에서는 아이들의 로봇을 향한 공격성을 지속적인 방해, 공격적 언어 사용, 폭력의 세 종류로 구분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이러한 행동들이 나타나는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후에 그러한 상황이 나타날 조건에서는 로봇이 그 상황을 회피하도록 구현했다. 이 연구에서는 로봇을 향한 아이들의 공격성을 문제 삼기는 했지만, 해결책으로 공격성을 없애는 것보다는 로봇이 그 상황을 회피하도록 하는 것을 제안했다. 더불어 굳이 로봇을 의인화시켜서 볼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열린 질문도 남겨두었다.
이탈리아의 로봇 연구자 살비니(Salvini)와 그의 동료들도 로봇에 대한 사람들의 공격성을 보고한 바 있다. 사람들은 로봇을 발로 차거나 때리는 등의 공격적이고 괴롭히는 행동을 하는데, 특히 로봇이 사람에 의해 조종되고 있지 않고 혼자 남아있게 될 경우에 사람들의 공격적인 행동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물론 로봇을 굳이 사람과 동등한 인격체로 간주하여 괴롭힘을 받는 로봇에 대해 과잉 반응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과 비슷한 모습의 로봇들이 점차 개발되고 있으므로 자칫 로봇에 대한 공격성이 사람에게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로봇 연구자들은 이러한 우려를 간과하기보다 역발상으로 이러한 현상이 인간 사회에 어떤 ‘사회적 유익’을 가져올 수 있을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로봇을 통해 사람들에게 윤리의식을 가르칠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이다. 만약 로봇을 향한 공격성을 절제할 수 있다면, 사람에 대한 공격적인 행동 조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즉, 로봇을 소중히 다루게 함으로써 존재의 소중함과 윤리에 대한 기초적 개념을 교육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앞에서는 로봇을 향한 사람들의 공격성을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은 로봇에게 동정심을 느끼기도 한다. 뉴질랜드 캔터베리 대학의 크리스토프 바트넥(Christoph Bartneck) 교수는 학대받는 로봇을 보면서 사람들은 학대받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로봇에게 동정심을 느낀다고 보고했다. 더불어 지능을 가진 듯한 로봇을 파괴하는 것에 사람들은 어려움을 느꼈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또한, 뒤스부르크-에센 대학의 A.M. 로센탈-폰 데르 퓌텐(Astrid M. Rosenthal-vol der Putten)도 로봇이 고문당하는 영상을 볼 때 사람들은 그 로봇에게 동정심과 불편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로봇을 대상으로도 인간의 공감능력은 여전히 나타난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감정이 윤리의 기초가 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로봇을 향한 불편한 감정이나 동정심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윤리의식의 개념을 교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볼 수 있다. 정서를 가진 로봇이 사람과 교감하면서 사람들의 공격성을 낮추고 공감과 존중을 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반면, 로봇과 인간을 대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기준이 다르기에 로봇을 향한 인간의 공감을 윤리 교육의 절대적인 요소로 보기 힘들다는 관점도 존재한다. 앞서 크리스토프 바트넥 교수의 연구 결과에서도 대상이 로봇이냐 사람이냐에 따라 사람들의 동정심 정도는 차이가 있었다.
이화여대 곽소나 교수팀은 얼굴 로봇 ‘멍(Mung)’을 이용하여 비교실험을 진행하였다. 멍 로봇은 전기 충격에 따라 얼굴에 멍을 나타내도록 하여 로봇의 감정(고통) 상태를 표현하록 구현된 로봇이다. 비교실험에서는 두 종류의 로봇이 사용되었다. 한 로봇은 사람에 의해 원격으로 감정 상태가 조종되었고, 다른 로봇은 로봇 스스로 감정을 만들어 얼굴에 표현하도록 구현되었다. 실험 결과 멍 로봇의 표현에 따라 피실험자는 스스로 감정 표현을 한다고 알려진 로봇보다 사람에 의해 조종된다고 알려진 로봇의 고통에 더 공감했다. 즉, 사람들은 로봇보다 로봇 너머에 있는 사람의 존재 여부를 더 의식했다는 의미다.
▲ 사진설명: 멍(Mung) 로봇과 고통 표현
미국 브라운 대학의 버트람 말레(Bertram F. Malle) 교수팀은 ACM/IEEE 인간-로봇 상호작용(HRI) 국제 학회에서 사람들은 인간과 로봇에게 각각 다른 도덕적 기준을 적용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수의 이익을 위해 한 사람을 희생하게 만드는 행동이 있을 때 사람들은 로봇이 그 행동을 하길 기대했다. 그리고 로봇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그 로봇을 비난했다. 반면, 로봇 대신 사람이 그러한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사람들에게 덜 비난받았다. 즉, 로봇에게는 공리주의(Utilitarian)를 요구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물었지만 사람에게는 공리주의에 대한 책임을 상대적으로 적게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과 로봇에 대한 도덕적 기준의 차이는 아직 로봇이 사람 수준의 지능이나 정서적 교감능력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고, 로봇과 사람의 근본적인 존재적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그 차이가 전자의 경우라면 로봇과 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때에, 인간과 로봇의 윤리체계와 관점이 재조정될지도 모른다. 최근 개봉했던 영화 ‘엑스 마키나(Ex Machina, 2015)’에서는 기존의 튜링 테스트를 뛰어 넘는 진화된 개념이 소개되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에게 상대가 로봇임을 알려준 이후에도 그 사람은 상대 로봇으로부터 인간성을 느끼는가에 대한 테스트다. 결국, 영화 속 주인공은 상대 로봇에게서 인간성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로봇에 대한 동정심과 죄책감을 느꼈다. 영화 ‘채피(Chappie, 2015)’에서도 주인공 로봇은 자의식과 정서를 갖게 되는데, 그 로봇 주위의 사람들은 로봇에 대한 동정심과 책임감을 느꼈다. 또한,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에서 로봇 타스(Tars)가 자신을 희생할 때, 주인공은 그 로봇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모두 영화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영화와 현실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로봇을 동등한 인격체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표현하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그 정도 수준의 로봇이 개발되지도 못했을뿐더러 로봇과 사람의 근본적인 존재적 차이에 대한 인식 역시 크다.
그럼에도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의 발달이 갖고 미래는 분명 인간 사회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놓을 것이다. 로봇은 인간의 동반자가 되어 한 가정 안에서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고, 로봇이 인간을 뛰어넘고 인간을 지배하고자 하여 로봇과 인간은 적대적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또는, 로봇이 인간의 성 노리개나 서바이벌 게임의 총알받이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사회는 아직 언제 올지 모르지만 그것이 가까운 미래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청소로봇을 비롯하여 자율주행 자동차, 레스토랑 서빙 로봇, 박물관 안내 로봇, 영어 교육 로봇, 노인을 위한 교감 로봇, 자폐아 치료 로봇 등 이미 많은 부분이 로봇에 의해 변하고 있다.
책 '로봇정신'의 저자이자 로보티즈 수석연구원 한재권 박사는 로봇 윤리에 대한 그의 글에서 “잊지 말고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은 사람과 생명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로봇이 인간 사회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로봇의 존재 목적일 것이다. 바로, 로봇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그 최고봉에는 생명에 대한 존중, 그리고 자유와 평등이 있다. 로봇을 대하는 윤리적 태도와 관점 또한 이러한 목적 위에 세워져야 하지 않을까. 로봇 연구자들 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로봇을 대하는 윤리적 태도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때다.▒이원형ㆍKAIST 로보트 연구실
로봇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게 하여 안전성과 신뢰도를 확보하고자 하는 기술들이 시도되고 있다.
지난 CES 2015에서 발표된 메르세데스 벤츠의 자율주행 자동차에는 이전 자율주행 자동차에서 볼 수 없었던 기능이 담겨있었다. 그것은 주변 상황과 능동적으로 의사 소통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보통의 자율주행 자동차는 주변에 사람이 지나가면 이를 인지하고 회피하는 동작을 하는데 그치지만, 벤츠사의 무인자동차에는 자동차 자신이 사람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사용자에게 능동적으로 알려주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자동차 전방에 달린 LED 디스플레이에는 원 모양의 ‘가상 눈동자’가 표시되고, 앞에 지나가는 사람을 따라가도록 한 것이다. 사람의 눈동자가 누군가를 의식하고 쳐다보는 것을 연상케 했다.
▲ 사람이 지나갈 때 인식 여부를 표시 하며 사람을 기다리는 벤츠사의 무인 자동차
이러한 자율주행 자동차의 능동적 의사 소통 기능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동차가 자신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 때문에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자동차의 ‘가상 눈동자’가 사람을 따라다니지 않는다면 그 상황은 자동차가 사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역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사람 스스로 위험한 상황을 피할 수도 있게 해준다. 심리적 안정감에 더불어 실제적 안전성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의사 소통 기능은 사람이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는 경우에는 당연한 것이었다. 바로 좌우 점멸등이나 비상등, 정지등, 그리고 수신호 등이 운전자의 주행 의도나 상태를 자동차 외부로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었고, 이 방법들을 통해 자동차 외부의 사람은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갈지 아니면 조심해서 자동차를 피해 가야 할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
그 동안의 무인자동차에는 이러한 의사 소통 기능이 부족했다. 길을 잘 인식하고 장애물을 회피하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외부 상황을 인식하는 센서 시스템은 발전했지만, 자동차의 상태를 외부로 나타내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있지는 못했다. 자동차가 길을 잘 찾는 것이 우선은 해결해야 할 문제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율주행 기술이 성숙해지면서 이제는 무인 자율주행 자동차가 실제 길거리로 나오게 되었고, 결국에는 사람과 함께 공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사람이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나 사람의 안전이라는 이슈가 접목이 되면서 무인 자율주행 자동차의 목적은 길을 잘 찾아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무인자동차가 위험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하는 임무도 가지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벤츠사의 시도는 무인자동차를 그저 일 잘하는 기계로 본 것이 아니라 사람과 의사소통하고 상호작용해야 하는 능동적 주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더욱 주목이 된다.
무인자동차를 로봇으로 치환해도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로봇이 서비스 로봇으로 넘어오면서 사람과 공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결국 로봇도 사람의 안전을 고려하여 개발되어야 하는 미션을 부여 받게 된 것이다. 로봇 팔의 예를 들면, 로봇 팔은 공장에서 정해진 규격의 환경에서 일을 할 때에는 정확하고 빠르게 일 처리를 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사람과 협력해야 하는 공장이라면 정확하고 빠르게 일 처리를 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로봇 팔 주위의 인간 노동자를 해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로봇 벡스터(Baxter)와 인간 동료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모습
리씽크 로보틱스(Rethink Robotics)의 로봇 벡스터(Baxter)는 다른 로봇 팔과 달리 사람의 눈이 그려진 태블릿 얼굴을 가지고 있다. 태블릿에 그려진 눈동자를 통해 무언가를 실제로 보지는 못하지만, 이 눈동자를 통해 사람은 로봇이 어느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이는 사람과 협력하는 작업 능률을 높일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로봇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자 하는지를 예측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게 해준다. (물론 태블릿 얼굴은 사람에게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여러 가지 다른 목적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이나 다룰 수 없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거나 거부감을 가진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토리 히긴스(Edward Tory Higgins) 교수는 사람에게 이득/손실에 대한 동기뿐 아니라 무엇이 진짜인지를 알고자 하는 동기, 그리고 주도권을 갖고자 하는 동기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동기들이 만족되었을 때는 행복감을 느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불안함과 상황에 대한 낙담을 느끼게 된다.
이것을 사람이 로봇을 대할 때의 상황으로 적용해보면, 사람은 로봇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알고 싶어 하고, 로봇을 자신이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이것들이 만족되지 않는다면 로봇이 실질적 위험 요소를 가지지 않더라도 사람은 로봇으로부터 공포감이나 거부감을 느끼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로봇에 대한 ‘기술공포증(technopanic 또는 technophobia)’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오게 된다.
로봇이 실질적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까지 더해지면, 로봇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를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영화 ‘엑스 마키나(Ex Machina, 2015)’에 나오는 인공지능 로봇은 자신이 목적하고자 하는 바를 사람에게 철저히 숨긴다. 그것은 로봇 자신이 갇혀있는 실험실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대신 로봇은 연기를 통해 주인공이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고, 자신을 만든 개발자까지 배신한다. 결국 로봇의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은 로봇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물론 영화에 나오는 인공지능은 먼 미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재 걱정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앨런 머스크(Elon Musk)에 이어 빌 게이츠(Bill Gates)도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한 요즘 영화 엑스 마키나는 대중에게 충분히 생각해 볼만한 이슈를 던지고 있다.
▲ 영화 엑스 마키나(Ex Machina, 2015)의 주인공 로봇
로봇은 포커페이스가 가능하다. 사람처럼 ‘어쩔 수 없이 표현’되는 동기나 의도들이 로봇에게는 ‘의도적으로 변형되어 표현’될 수 있다. 로봇이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인공지능의 발전에 감탄을 해야 할까, 아니면 사회적인 경각심을 일깨우는데 더 노력을 해야 할까? 거짓말을 하는 포커페이스의 로봇이 가능해 진다면 사회적인 위험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위험성을 해소하기 위해 앞서 로봇을 개발할 때 로봇의 속내가 내비치어 지도록 구현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속내’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로봇의 ‘내부 상태’나 로봇 내에서 설정된 ‘목표’를 의미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앞서 벤츠사의 자율주행 자동차나 로봇 벡스터의 경우가 로봇의 상태를 외부에 능동적으로/적극적으로 나타냄으로써 사람이 자동차나 로봇에게 느끼는 불확실함을 해소시켜준 예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아이, 로봇(I, Robot, 2004)’에서는 로봇이 자신의 속내를 적절히 내비치어 사람과 긍정적 협력을 한 예를 보여주었다. 주인공 로봇은 영화 후반에 인간 주인공에게 윙크를 하면서 자신이 인간 편임을 확신시켜 주었고, 결국 윙크 하나로 로봇과 인간은 협력하여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윙크가 있기 전까지 인간 주인공은 로봇이 사람을 해치기 위해 행동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 영화 아이, 로봇(I, Robot, 2004)에서 주인공 로봇이 사람을 협박하고 있는 것처럼 연기하고 있는 모습
이처럼 로봇이 자신의 상태나 의도를 내비침으로써 사람이 로봇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면 로봇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로봇이 정상적으로 동작하고 있을 때뿐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사람이 이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로봇에 대한 안전성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아직은 더 많은 고민과 응용분야들이 나와야 하겠지만, 로봇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게 하는 기술들이 시도되고 있다. 개발자들이 로봇을 개발할 때 이러한 고민들을 함께 하고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미래의 로봇뿐만 아니라 현재 이슈화가 되고 있는 자율 로봇의 안전성과 신뢰도에 대한 문제도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원형 ㆍKAIST 로보트 연구실
개성(성격, personality)을 가지는 로봇에 대한 연구가 발전하고 있다. 일률적으로 양산되는 기계들 사이에서 하나의 로봇이 다른 로봇과 차별성을 가지는 개성을 어떻게 부여할지 여러 로봇 연구자들이 해답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개성을 가진 로봇이란 어떤 것일까? 영화를 통해 그려진 로봇을 살펴보면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해 볼 수 있다. 영화 ‘바이센티니얼 맨(Bicentennial Man, 1999)’의 여성형 로봇 갈라테아(Galatea)는 혼자만 있는 시간에도 가만히 있지 않고 노래를 흥얼 거리며 춤추듯 걸어다닌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서슴없이 말을 걸고, 약간은 흥분되어 있는 듯한 모습의 갈라테아는 활달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로봇인 앤드류 마틴 조차도 갈라테아의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장면이 영화상에서 연출되기도 했다.
▲ 영화 ‘바이센티니얼 맨’의 한 장면. 춤을 추고 있던 로봇 ‘갈라테아(Galatea)’
실제 로봇들 중에도 다양한 개성을 보여주도록 개발된 로봇들을 찾아볼 수 있다. 와세다 대학교 타카니시 랩의 로봇 ‘코비안(Kobian)’은 우스꽝스러운 제스처와 목소리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농담을 던지며 한 명의 코미디언이 된다. 그림을 그리거나 예술작품을 다루면서 자신만의 창작 스타일을 뽐내는 로봇들도 있다. 골드스미스 대학의 패트릭 트레셋(Patrick Tresset)이 개발한 로봇 ‘에이콘(AIKON)’은 사람과 도화지를 번갈아 가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초상화를 그려낸다. 이 로봇이 그리는 그림은 프린터가 인쇄기를 통해 사진을 출력하듯이 정교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크로키와 같이 몇 개의 선으로 얼굴을 스케치하여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 느낌을 선사한다. IDC miLAB의 가이 호프만(Guy Hoffman) 박사가 조지아공대에서 공동으로 개발했던 마림바 연주 로봇 ‘샤이먼(Shimon)’은 사람과 함께 공동 연주를 하도록 구현된 로봇이다. 이 로봇은 자신의 파트에서는 열정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연주를 하다가도 사람과 템포를 맞춰야 하는 파트에서는 사람과 시선을 교환하며 차분한 모습으로 상태를 전환하기도 한다.
▲ 우스꽝 스러운 제스처와 표정을 보이고 있는 로봇 코비안(Kobian)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로봇에 개성이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일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바로 로봇의 외형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다. 히로시 이쉬구로(Hiroshi Ishiguro) 교수가 개발한 로봇 ‘제미노이드 F(Geminoid F)’는 하나의 로봇이 한명의 사람을 똑같이 닮도록 만들어졌다. 바로 그 한명의 사람이 다른 그 누구와 같을 수 없듯이 그 사람을 꼭 닮게 만든 로봇 또한 다른 그 어떤 로봇과 같을 수 없다. 바로 생김새가 ‘제미노이드 F’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최근 도시바에서도 사람을 꼭 닮은 로봇 ‘에이코 치히로(Aiko Chihiro)’를 개발해 도시바만의 로봇을 선보였다. 이 로봇은 여성형 로봇으로 친절한 성격이 느껴질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방문자 안내를 위해 사용될 계획이다.
하지만 외형만으로 로봇의 개성을 이야기하기는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 앞서 이야기한 영화 ‘바이센티니얼 맨’의 로봇은 생김새보다 행동으로 그 로봇의 성격적 특징을 결정짓는다. 예를 들어 외향적인 로봇은 목소리가 더 크다거나 움직임의 범위가 더 넓고, 내향적인 로봇은 수줍어하거나 정서적 표현을 자주 하지 않는 식의 행동 양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갈라테아가 외향적 성격을 보이는 로봇의 대표적 예로 볼 수 있다.
두드러진 행동 이외에 사소하거나 미세한 움직임이 로봇을 더 살아있거나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그 사소한 행동에는 윙크나 고개의 끄덕임, 시선 회피, 뚜렷한 목적이 없는 행동(Idle motion) 등이 포함된다. 가이 호프만(Guy Hoffman) 박사가 개발한 로봇 트래비스(Travis)는 음악에 맞추어 고개와 발을 흔드는데, 사소한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로봇의 개성이 잘 나타나있다.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행동이라도 사람은 그러한 사소한 움직임을 통해서도 로봇만의 차별성을 찾아내 그 로봇에게 성격을 부여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관련 심리학 연구로 사람들은 자신이 다루는 기계들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그것만의 성격을 파악하고자 하거나 사람과 닮은 특성들을 기계에 부여하려고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 영화 ‘아이, 로봇(I, Robot, 2004)’에서 주인공 로봇이 윙크를 하는 장면
사용자와 로봇이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그 로봇만의 특별함이 생기기도 한다. 에니메이션 ‘월-E(Wall-E, 2008)’에서 주인공 로봇인 ‘월-E’는 동반자 로봇 ‘이브’와 함께 여정을 거치며 추억을 쌓아가다가 여정 마지막 즈음 메모리가 손상되는 사고를 당해 ‘평범한’ 청소 로봇으로 초기화되고 만다. 초기화된 월-E는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특별한 존재의 로봇이 아니었다. 즉, 공유된 경험이 그 로봇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였던 것이다. 실제 교육현장에서 테스트된 실험에서도 사용자와 로봇의 경험 공유의 중요성을 밝힌 연구가 있었다. 아이와 로봇이 상호작용을 하기 전에는 로봇에 대한 아이의 감정이 부정적이거나 중립적이었던 것에 비해 상호작용이 진행된 후에는 로봇을 친밀하거나 중요한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연구다. 같은 로봇이라도 받아들이는 사용자의 상호작용 경험에 따라 그 양상이 변하게 되는 것은 로봇의 개성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상호작용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로봇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에서 이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사용자가 스마트폰을 사용할수록 스마트폰의 사용자 맞춤형 서비스는 해당 기기만의 특별함을 극대화 시켜준다. 스마트폰은 공유된 경험(사용자가 찍은 사진, 영상, 검색 기록, 사용 시간대, 서비스된 위치 등)을 수집 및 분석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그것이 정서적인 서비스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정보가 고스란히 스며든 스마트폰에 특별함을 느낀다. 물론 가끔 무서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건 우리가 아직 그러한 기술에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되었건 스마트폰의 경우를 통해 우리는 사람과 로봇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 간접적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로봇의 개성을 결정짓는 요소들을 수치화 및 정량화할 수 있을까?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E. Tory Higgins)는 세상을 바라보고 대처하는 양상이나 선택에 대한 선호도를 결정짓는 상황에서 한 사람의 성격이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즉, 결정 및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각 사람마다의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고 그것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로봇에게도 선택(Decision Making)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개변수를 조절하여 그 로봇만의 특별한 행동 양상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면, 그 결과로부터 우리는 그 로봇만의 상황 대처 방식, 즉, 로봇의 개성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 매개변수를 어떻게 고안하고 조절할지가 로봇의 개성을 연구하고 개발하는데 중요한 기술이다.
성격 심리학이나 로봇 및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성격 모델은 5요인 모델(Big Five 혹은 Five Factor Model)이다. 이 모델에서는 성격을 이루는 5가지 요인으로 외향성(Extraversion), 친화성(Agreeableness), 성실성(Conscientiousness), 신경증(Neuroticism), 개방성(Openness)이 있다고 설명한다.
로봇 연구자들은 로봇의 생김새나 행동 특징, 음성 합성 등의 디자인 특징들이 바뀔 때 위 다섯 가지 성격 요인이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고 나타나는지 연구하고 있다. 미국전기전자학회의 저널 감성 컴퓨팅(IEEE Transaction on Affective Computing) 최근호에는 개성을 컴퓨팅하는 것에 대한 서베이 논문이 실렸다. 여기에 정리된 내용에는 사람의 개성을 분석하는 컴퓨팅 기술에 대해서도 정리가 되어있고, 로봇이나 가상 에이전트의 개성을 만들어내는 성격생성기술(Automatic Personality Synthesis)에 대한 연구들도 정리되어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성격생성기술은 첫째로 음성 합성에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합성된 음성의 크기와 톤, 말의 빠르기 등에 따라 외향성의 높고 낮음 등이 얼마나 나타났는지 평가된다. 생김새와 얼굴 표정, 몸 움직임 등을 비교하여 에이전트들의 외형적 디자인 요소들이 어떠한 개성적 특징으로 나타나는지 탐구하는 연구도 소개되었다. 실제 로봇에도 어떤 디자인 요소들이 개성을 느끼게 하는지 탐구하는 논문들이 소개되기도 했다. 로봇의 외형 뿐 아니라 선택하는 단어와 문장의 종류, 사용자와 로봇의 물리적 거리, 로봇의 시선 처리 등에 대한 특징들도 개성을 평가하는 요소로 사용되었다.
▲ 외형에 따라 어떤 개성 특징이 나타나는지 평가하기 위해 디자인된 가상 에이전트들
하지만 성격생성기술은 실제 로봇 응용 연구에서는 다양하게 진행되어오지는 못했다. 그동안의 로봇 연구에서 로봇의 디자인은 작업을 하기 편하게 고안되어왔고, 로봇 개발자의 개인적 판단에 의존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성격의 5가지 요인 중 외향성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으로 많이 이루어졌지만 나머지 성격 요인인 친화성, 성실성, 신경증, 개방성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미흡한 수준이다. 그리고 그동안은 로봇이나 가상 에이전트의 표현을 위주로 개성이 연구되어 왔지만, 상황에 따른 인공지능의 결정 프로세스와 대처 방식에도 개성의 개념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인간과 로봇이 밀접한 교류를 하게되면서 사람은 로봇을 더욱 사회적인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소셜 로봇 분야에는 로봇의 개성이라는 주제가 중요한 분야로 떠올랐다.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지만 사람의 요소들을 이해하고 모델링하여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융합 학문으로서 발전 가능성이 큰 영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따라 로봇이나 가상 에이전트에게 개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연구 결과들도 점차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률적으로 동일한 서비스만 제공하는 로봇이 아니라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사용자와 교류를 하며 사용자에게 특별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로봇의 발전을 기대해본다.▒ 이원형 KAIST 로보트 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