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게 하여 안전성과 신뢰도를 확보하고자 하는 기술들이 시도되고 있다.
지난 CES 2015에서 발표된 메르세데스 벤츠의 자율주행 자동차에는 이전 자율주행 자동차에서 볼 수 없었던 기능이 담겨있었다. 그것은 주변 상황과 능동적으로 의사 소통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보통의 자율주행 자동차는 주변에 사람이 지나가면 이를 인지하고 회피하는 동작을 하는데 그치지만, 벤츠사의 무인자동차에는 자동차 자신이 사람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사용자에게 능동적으로 알려주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자동차 전방에 달린 LED 디스플레이에는 원 모양의 ‘가상 눈동자’가 표시되고, 앞에 지나가는 사람을 따라가도록 한 것이다. 사람의 눈동자가 누군가를 의식하고 쳐다보는 것을 연상케 했다.
▲ 사람이 지나갈 때 인식 여부를 표시 하며 사람을 기다리는 벤츠사의 무인 자동차
이러한 자율주행 자동차의 능동적 의사 소통 기능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동차가 자신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 때문에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자동차의 ‘가상 눈동자’가 사람을 따라다니지 않는다면 그 상황은 자동차가 사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역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사람 스스로 위험한 상황을 피할 수도 있게 해준다. 심리적 안정감에 더불어 실제적 안전성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의사 소통 기능은 사람이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는 경우에는 당연한 것이었다. 바로 좌우 점멸등이나 비상등, 정지등, 그리고 수신호 등이 운전자의 주행 의도나 상태를 자동차 외부로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었고, 이 방법들을 통해 자동차 외부의 사람은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갈지 아니면 조심해서 자동차를 피해 가야 할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
그 동안의 무인자동차에는 이러한 의사 소통 기능이 부족했다. 길을 잘 인식하고 장애물을 회피하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외부 상황을 인식하는 센서 시스템은 발전했지만, 자동차의 상태를 외부로 나타내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있지는 못했다. 자동차가 길을 잘 찾는 것이 우선은 해결해야 할 문제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율주행 기술이 성숙해지면서 이제는 무인 자율주행 자동차가 실제 길거리로 나오게 되었고, 결국에는 사람과 함께 공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사람이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나 사람의 안전이라는 이슈가 접목이 되면서 무인 자율주행 자동차의 목적은 길을 잘 찾아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무인자동차가 위험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하는 임무도 가지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벤츠사의 시도는 무인자동차를 그저 일 잘하는 기계로 본 것이 아니라 사람과 의사소통하고 상호작용해야 하는 능동적 주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더욱 주목이 된다.
무인자동차를 로봇으로 치환해도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로봇이 서비스 로봇으로 넘어오면서 사람과 공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결국 로봇도 사람의 안전을 고려하여 개발되어야 하는 미션을 부여 받게 된 것이다. 로봇 팔의 예를 들면, 로봇 팔은 공장에서 정해진 규격의 환경에서 일을 할 때에는 정확하고 빠르게 일 처리를 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사람과 협력해야 하는 공장이라면 정확하고 빠르게 일 처리를 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로봇 팔 주위의 인간 노동자를 해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로봇 벡스터(Baxter)와 인간 동료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모습
리씽크 로보틱스(Rethink Robotics)의 로봇 벡스터(Baxter)는 다른 로봇 팔과 달리 사람의 눈이 그려진 태블릿 얼굴을 가지고 있다. 태블릿에 그려진 눈동자를 통해 무언가를 실제로 보지는 못하지만, 이 눈동자를 통해 사람은 로봇이 어느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이는 사람과 협력하는 작업 능률을 높일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로봇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자 하는지를 예측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게 해준다. (물론 태블릿 얼굴은 사람에게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여러 가지 다른 목적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이나 다룰 수 없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거나 거부감을 가진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토리 히긴스(Edward Tory Higgins) 교수는 사람에게 이득/손실에 대한 동기뿐 아니라 무엇이 진짜인지를 알고자 하는 동기, 그리고 주도권을 갖고자 하는 동기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동기들이 만족되었을 때는 행복감을 느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불안함과 상황에 대한 낙담을 느끼게 된다.
이것을 사람이 로봇을 대할 때의 상황으로 적용해보면, 사람은 로봇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알고 싶어 하고, 로봇을 자신이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이것들이 만족되지 않는다면 로봇이 실질적 위험 요소를 가지지 않더라도 사람은 로봇으로부터 공포감이나 거부감을 느끼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로봇에 대한 ‘기술공포증(technopanic 또는 technophobia)’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오게 된다.
로봇이 실질적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까지 더해지면, 로봇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를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영화 ‘엑스 마키나(Ex Machina, 2015)’에 나오는 인공지능 로봇은 자신이 목적하고자 하는 바를 사람에게 철저히 숨긴다. 그것은 로봇 자신이 갇혀있는 실험실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대신 로봇은 연기를 통해 주인공이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고, 자신을 만든 개발자까지 배신한다. 결국 로봇의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은 로봇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물론 영화에 나오는 인공지능은 먼 미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재 걱정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앨런 머스크(Elon Musk)에 이어 빌 게이츠(Bill Gates)도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한 요즘 영화 엑스 마키나는 대중에게 충분히 생각해 볼만한 이슈를 던지고 있다.
▲ 영화 엑스 마키나(Ex Machina, 2015)의 주인공 로봇
로봇은 포커페이스가 가능하다. 사람처럼 ‘어쩔 수 없이 표현’되는 동기나 의도들이 로봇에게는 ‘의도적으로 변형되어 표현’될 수 있다. 로봇이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인공지능의 발전에 감탄을 해야 할까, 아니면 사회적인 경각심을 일깨우는데 더 노력을 해야 할까? 거짓말을 하는 포커페이스의 로봇이 가능해 진다면 사회적인 위험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위험성을 해소하기 위해 앞서 로봇을 개발할 때 로봇의 속내가 내비치어 지도록 구현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속내’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로봇의 ‘내부 상태’나 로봇 내에서 설정된 ‘목표’를 의미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앞서 벤츠사의 자율주행 자동차나 로봇 벡스터의 경우가 로봇의 상태를 외부에 능동적으로/적극적으로 나타냄으로써 사람이 자동차나 로봇에게 느끼는 불확실함을 해소시켜준 예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아이, 로봇(I, Robot, 2004)’에서는 로봇이 자신의 속내를 적절히 내비치어 사람과 긍정적 협력을 한 예를 보여주었다. 주인공 로봇은 영화 후반에 인간 주인공에게 윙크를 하면서 자신이 인간 편임을 확신시켜 주었고, 결국 윙크 하나로 로봇과 인간은 협력하여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윙크가 있기 전까지 인간 주인공은 로봇이 사람을 해치기 위해 행동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 영화 아이, 로봇(I, Robot, 2004)에서 주인공 로봇이 사람을 협박하고 있는 것처럼 연기하고 있는 모습
이처럼 로봇이 자신의 상태나 의도를 내비침으로써 사람이 로봇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면 로봇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로봇이 정상적으로 동작하고 있을 때뿐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사람이 이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로봇에 대한 안전성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아직은 더 많은 고민과 응용분야들이 나와야 하겠지만, 로봇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게 하는 기술들이 시도되고 있다. 개발자들이 로봇을 개발할 때 이러한 고민들을 함께 하고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미래의 로봇뿐만 아니라 현재 이슈화가 되고 있는 자율 로봇의 안전성과 신뢰도에 대한 문제도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원형 ㆍKAIST 로보트 연구실